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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스페인 (3) 밥먹자

슬로우마드 이미써니🌞 2023. 8. 2. 23:26

한국인은 모든 인사말에 밥이 빠지지 않는다는 말을 처음 듣고 생각을 하다 한참을 웃었었다. 밥 먹었냐, 밥 먹으러 가자, 밥 한번 먹자, 등등 한국인은 정말 밥심으로 사는건가 언제나 밥이 우선이지 밥이 뒷전이 되는 경우는 없다. 밥이 왜이렇게 중요하지? 거기에 밥 같이 먹는 것도. 함께 식사하는 것은 몸을 나누고 영혼을 나누는 행위라는 말까지 있다. 밥도 중요한데 더해서 도대체 왜 함께 식사를 하는 것이 그렇게 강력한 것일까? 꼭 먹어야 사는 우리인데, 그걸 다른 사람과 나눈다고 뭐가 그렇게 다른가?

근데 그게 다르더라. 왜인지는 나도 아직 모르지만. 그저 함께 요리하고 이야기하고 웃고 떠들고 춤추고 노래하는 그 속에서 음식이라는 게 마음만을 위한게 아니구나, 내 마음과 영혼을 위한 것이구나를 다시 느끼는 순간들이 있었다. 스페인에서. 

내가 지낸 첫 코리빙 하우스 썬앤코에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 끼는 모든 멤버들이 다같이 모여서 함께 요리하고 같이 식사하는 패밀리디너가 있다. 식사를 기획하고 주도하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이 무슨 요리를 할지를 결정해서 필요한 식재료를 패밀리디너 당일이나 전날에 유리벽에 쭉 적는다. 그러면 각자가 보고 자기가 사올 재료 옆에 이름을 적거나 줄을 그어서 겹쳐서 사오지 않도록 한 다음, 식사 시간이 되기 한두시간 전부터 요리를 같이 시작한다. 그 주의 패밀리 디너 담당자가 총괄 셰프가 되어서 각자에게 할 일을 지시하고, 누구는 재료 손질, 누구는 기름에 달달 볶기, 각자 자기가 맡은 역할을 해낸다. 셰프 역할을 맡은 사람은 끊임없이 전체가 잘 돌아가고 있는지 확인하고, 그와중에 배경음악은 항상 크게! 이 때 나누는 대화들은 절대 지루하지 않다. 넌 어디서 왔고 무슨 일을 하냐는, 계속 반복해서 지겨운 대화는 온데간데 없고, 우리는 같이 엉덩이를 흔들고, 손을 높이 들고 서로 윙크를 해대며 노래를 부른다. 마주보고 웃는다. 즐거워서 웃기도 하고, 웃겨서 웃기도 하고, 웃음에 다양한 감정이 담긴다. 

썬앤코에서 지낸지 2주가 지났나. 애들이 한국음식이 궁금하다 그래서 비빔밥을 하기로 했다. 고추장을 못구해서 스리라차 소스에다가 짠 맛, 매운 맛, 단 맛, 감칠 맛 등등 다 담으려고 구할 수 있는 것들 중에서 대충 때려 박았다. 스리라차 소스를 베이스로 하고 간장이랑 타바스코 소스를 넣고 야채육수 가루까지 추가해서 맛을 본다. 아 역시 고추장이 있어야하는데. 정말 쉽지 않았다. (그래도 요리는 손맛 아입니까 하면서 어찌 저찌 해냄) 당근팀, 양파팀, 호박팀, 버섯팀 등등 각각 재료를 맡기고 나는 밥을 했다. 밥이 제일 중요하지 ... 이미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살면서 어느 정도 냄비밥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대용량을 해본 적은 없었어서 걱정을 좀 했는데, 중간에 몇 번 섞어주고 난 후에 뜸을 오래들였더니 다 익었다! 끼야호! 어떻게 플레이팅을 해야할지를 설명하고 샘플로 하나를 담아서 보여줬다. 다들 그릇을 하나씩 잡아서 밥에 나물들을 하나씩 올리고 마무리는 계란후라이까지. 그럴듯해졌다. 

다같이 모여 앉은 자리에서 설명했다. 한국인은 주로 밥, 국, 반찬들 이렇게 있지만 이렇게 한그릇으로 먹을 때도 있어. 밥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해. 밥이라는 단어는 그저 rice 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지고 있고, 그 중요성은 1) 모든 인사에 밥이 들어가며, 2) 우리는 어마어마한 밥솥을 집집마다 갖고 있는 것에서 알 수 있다고. 한국인에게 밥이 주는 의미는, 정이고, 안부인사고, 사랑이고, 나눔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마치고 외쳤다. "밥먹자!"

맛있다고 연발하는 애들을 보고 있자니 뿌듯하다. 밥해먹이는 재미가 이런거지. 우리의 유대감에 새로운 층이 쌓여간다. 이렇게 같이 밥을 먹으면서 가족이 된다. 끼니가 늘어나면 이 층이 더 두꺼워지겠지. 그 끼니의 수가 셀 수 없이 많아지면 그 두께에, 수가 적을 때에는 그 각각의 기억과 추억에 우리의 유대감은 뿌리를 내릴 것이다. 스페인에서의 매일매일을, 나는 재밌고 맛있는 기억 속에 나를 담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