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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스페인 바닷가 (1) 스페인에서 처음 만난 코리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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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6월 스페인 바닷가 (1) 스페인에서 처음 만난 코리빙

슬로우마드 이미써니🌞 2023. 7. 20. 04:41

영국에 도착해서 혼자서 돌아다니니까 유럽에 온게 실감이 났다. 처음 왔다 유럽을. 나는 이전부터 유럽에 대한 양가감정(전쟁을 일으키고 침략해왔던 국가들이라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많이 보존된 것)이 커서 유럽에 오는 것을 주저했었는데 (물론 돈도 없었지만) 막상 와보니까 그런 건지, 유럽에 간다고 마음을 먹고 와서 그런지, 양가감정보다는 그저 내가 제때에 잘 왔구나 싶었다. 지금보다 어렸을 때 왔으면  푹 빠져서 좋은 것만 보고 정신을 못 차렸겠구나 하면서.

영국에서는 라이브 뮤직에, 마켓에, 레미제라블 뮤지컬도 보고 친구들도 오랜만에 만나서 수다도 떨었다. 영국 음식 맛없는거 알고 왔는데도 맛있다는 데를 데려가준다. 인도음식점이다. 그래, 고맙다. 이런 거였지. 내가 즐거웠던 삶이. 거기에 아무리 내가 한국에서 영어를 사용했어도 영국에서는 사방에서 영어가 기본언어로 들려오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이제 시동 다시 걸어야지. 점점 다시 몸이 풀리고 감각들도 더욱 살아나고, 나는 자유로워짐을 느낀다. 분명 나는 걷고 있는데 뛰는 것 같은 느낌이 난다. 가볍다. 머리도 어깨도 발걸음도. 짧게나마 혼자서만 갖는 시간을 갖길 잘했구나. 하루종일 걸어다녀도 외롭지 않고, 공원에 앉아서 하염없이 백조들을 쳐다보다가 문득 책을 읽고 싶어서 나에게 책을 읽어준다. 그 때 느끼는 자유로움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내 인생의 항해사가 되는 기분이라고 답하겠다.

'흰 천과 바람만 있으면 어디든 갈 수 있어.'

드라마 대사로 나왔었던 말이지만, 나에게 한국 밖으로 나와서 생활하는 것은 정말 내 자유로움을 극대화하여 생활하는 것을 만끽하는 것. 내가 스스로 혼자 결정하는 것이 너무 많고, 그래서 무서운 이 바다 위에서 내 배를 몰고 어디든 가려고 하는. 무서움을 이기는 편안함이 내 자유다. 

자유를 되찾은 몸으로 스페인에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런던에서 출발해서 스페인 알리칸테Alicante에 내려서 Blablacar 라고 목적지가 같은 운전자의 차를 적은 금액을 내고 얻어타는 건데 이걸 예약을 했다. 문제가 없을 줄 알았는데. 아뿔싸 나 유럽이 처음인데 너무 만만하게 봤던 게 뽀록났다. 영어도 안 통하고, 운전자와 만나기로 한 지점은 찾지도 못하고, 핸드폰은 배터리가 나가서 보조배터리를 겨우겨우 꺼내서 연결했는데, 결국 약속했던 운전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체되었다고 가버렸고, 나는 돈만 날린 채로 도착지 하베아Javea까지 버스를 타고 가기로 했다. 기차가 안 지나가는 동네라서 어쩔 수 없이 버스라니! ㅋㅋ 

 

런던에서 하베아로

 

내가 가벼운 배낭 하나면 참 좋았을 텐데, 23키로를 꼭 채운 캐리어에 노트북가방은 따로 들고 낑낑거리면서 걸어서 겨우 버스터미널 도착해서 표끊고 자리에 앉아서 스페인의 풍경을 처음 제대로 바라봤다. 참 이상한게, 자유를 느끼는 순간에는 힘들어도 덜 힘들다. 무서워도 괜찮은 것처럼. 자유로움은 모든 감정과 느낌, 감각을 끌어안는다. 그렇게 모든 것을 느끼면서 몇시간을 풍경을 보다 조금 졸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도착! 버스 터미널에서 내리고 나서도 10분 정도를 오르막 내리막을 왔다갔다 하다가 내 앞에 서있는 노란 건물 나무 문을 발견했다. 

여기가 집이다. 내 집.

한 달동안 내가 지낼 집이다. 인턴 유스라가 나를 반갑게 맞아준다. 방으로 데려가서 환영카드와 환영와인을 보여주고, 숙소 곳곳을 소개한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인사하고 간단히 소개를 하고, 몇몇은 포옹으로 환영한다. 안기자마자 우리는 좋은 인연이 되겠구나 느끼는 인연이 있다. 끈이 닿아있는 사람들. 

짐을 풀고 조금씩 공간을 눈에 다시 담아본다. 한 달 동안 하루하루는 느리게 지나가지만 한 달의 끝은 빠르게 다가올 것임을 이미 직감한다. 내 디지털 노마드 두번째 여정이 진짜 시작됐다. 

 

 

안자마자 끈이 닿아있음을 알려준 이들, 유스라와 아이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