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빛나는 디지털 노마드 생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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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노생활연재기 2022.5부터!

2022년 5월 한국 (1)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슬로우마드 이미써니🌞 2023. 6. 30. 00:29

이미 2022년이 들어서면서 나는 "여름이 다가올 때 쯤이면 떠나야지"하고 생각하고 있었다. 2020년 4월에 코로나로 인해 국경들이 닫히기 시작하고 2년을 채워나가던 때였다. 2020년 3월, 당시 캐나다에 있던 나는 뉴질랜드에 정착하고자 3년짜리 워킹비자를 받았지만 국경이 닫히기 전에 들어갈 수는 없었고 고민 끝에 한국에 돌아와야만 했다. 돌아와서는 그 때까지 길게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부모님과 같이 살면서 1) 캥거루족 생활을 하고, 2) 세 가지 일로 풀타임 주 40시간을 채우고, 3) 캥거루족인 만큼 최대한 저축을 하고, 4) 내가 지금까지 산 것을 토대로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고 5) 그 결론으로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살기로 결심하였기에 6) 언제 다시 떠날 수 있을 것인지를 생각했다. 거기에 7) 폴댄스 3급도 땄다. 와우, 지금 생각해봐도 2년간 한국에 있었지만 나름 알찼네. 

나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했는데, 이 두 곳에서 정착을 하고자 기술이민 준비를 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서 2016년도부터의 이야기다. 내 교사 자격증을 호주 기관에 인증받고(참고로 비싸고 오래 걸린다), 영어 인증 시험을 보고(한 번에 30만원 넘나 그런데 중등교사라 아이엘츠 8778 을 받아야했다. 아는 사람은 알지만, 이거 높은 점수다. 나는 9979 인가, 그 정도를 받았다. 한 번에 받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받았으니까 자랑임 흠흠), 기술이민 시스템에서 점수를 더 따려고 통역시험도 치고(역시 비싸다), 통역시험을 치기 위해서 호주 왔다갔다하는 비용에(비행기값, 숙소비 등등), 그리고 나서 호주 이민이 어렵게 되어서 뉴질랜드 비자 접수를 위해 변호사 선임 비용에, 비자 자체 비용도 만만치 않고, 결국 워킹 홀리데이 동안 모았던 돈들은 싸그리 증발해버리고 내가 한국에 다시 돌아왔을 때에 난 거의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다. 캐나다에서 코로나때문에 뉴질랜드로 못 돌아가고 한국에 들어올 때 아시아나항공 편도 금액은 200만원이 넘었다. 비행기는 만석이었다. 

결국 이민은 좌절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나. 아무 것도 없는 제로베이스. 그저 몸뚱아리 하나와 뭐라도 일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나. 그래도 그동안 서른이 넘어가는 인생 살면서 겪은 것이 있고, 배운 것들이 있어 내면은 분명 성장해있었기에 고민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지금 생각해보면 크게 고민했는지는 사실 기억이 잘 안난다. 이미 호주 이민으로 좌절을 겪었던 터라 다시 좌절된 상황에서 머리를 싸매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떻게 살아도 다 살아지고, 지금의 내 상황이 결국은 나를 가장 좋은 곳으로 이끄는 것이라는 것을 믿었기 때문일까? 뉴질랜드 정착을 꿈꾸면서 자연스럽게 내려놓았던 디지털 노마드의 꿈을 다시금 집어들었다. 착실하게 돈을 모으면서. 당시 수입은 나쁘지 않았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워라밸도 괜찮았다. 폴댄스를 다시 하면서 몸도 건강했다. 부상도 있었지만 내 몸 컨디션은 최고였다. 그런데 왜 한국에서 그렇게 계속 안 살고 디지털 노마드의 생활을 다시 집어들었냐고 묻는다면, 상당히 괜찮은 생활이었음에도 한국에서 지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이미 한국 사회에서의 한계를 너무 크게 느끼고 있었다. 다양성이 부족해서 너무 획일적이고, 정해진 디폴트 값이 답답했다. 

더 간단하게 말하면, 나는 한국 생활이 재미가 없었다. "정말이지, 난 한국 생활이 재미나지가 않어~" (충청도 사투리로 읽어주시라) 나와 가장 마음을 깊게 나누는 친구들은 모두 외국에 있고, 나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누린 느리고 여유있게 사는 삶을 한국에서 살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다고 내가 무슨 남들이 하는 이야기에 크게 신경쓰거나 동요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런 편은 아니다. 하지만 정상값 자체가 다른 사회에서 내가 정상값으로 사는 것과 내가 정상값에서 크게 벗어나서 남들을 신경쓰지 않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나를 굳이 계속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고 나 그대로가 있는 대로 살아도 이상하지 않은 생활이 나는 좋았다. 그립고

그래서 나는 두번째로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살아보기로 했다. 첫번째는? 언제 그렇게 살아봤냐고? 아까 글 맨 앞에도 말했지만, 코로나 직전까지도 나는 호주, 뉴질랜드, 하와이, 캐나다를 떠돌며 오랜 친구들을 만나고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했다. 뉴질랜드 정착하기위해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접을 생각을 굳히기까지. 다시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하려니, 한국에서는 부모님 집에서 살 때는 집세가 안드는데 다시 집세를 내려니 돈이 좀 아까워졌다. 전에는 원래 알던 친구들이 사는 동네에 가서 지내는 것만 했는데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고 다른 디지털 노마드들을 만나고도 싶어졌다. 치앙마이나 발리에 많이 모인다던데, 나는 새로운 곳을 가보고 싶어서 안가본 유럽을 찾아봤다. 그랬더니 세상에.

디지털 노마드들을 모집해서 한달 생활을 같이 하는, 굳이 무슨 업종이라고 딱 집어야만 한다면 여행회사라고 말을 해야할 것 같은(?!) 곳에서 사람을 뽑는거 아닌가? 되기만 하면 비행기값도 대주고 체류비도 주고 숙소는 공짜라니. 대박이네. 서류를 넣었다. 김치국을 줄줄 마시면서 3차 면접까지 다 보고 합격하면 여름 쯤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서류를 넣은지 두달만에 연락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