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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한국에 돌아와서 느끼는 공간의 중요성

슬로우마드 이미써니🌞 2023. 3. 6. 19:20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영국, 스페인, 사이프러스, 나미비아, 남아공, 태국에서 시간을 보냈는데 한국에서 업무가 있어서 귀국을 했다. 일주일 정도 서울에서 생활을 하고 나니, 조금씩 나의 삶을 옥죄어오는 이 느낌을 다시금 느끼게 되고, 이 느낌의 근원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태로 흘러가고 있다. 나의 생활이.

 

일단 내가 한국에서 답답함을 많이 느끼는 지점들이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것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주는 공간의 한계에 대한 것이다. 무엇인고하니, 당장에 가진 돈이 없고 버는 돈도 크지 않은 나는 큰 집을 얻을 수가 없는데, 나와 유사한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가 한정되어 있어서, 결국 주거공간은 원룸이 된다. 서울의 원룸에서 지내본 이는 알겠지만, 원룸은 정말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에 적합한 공간이 아니다. 너무 작고, 좁고, 공간이 잘 구분되지 않고. 그런 작은 곳을 나만의 공간이라고 하고 푹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일로 또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것으로 이미 상당부분 지쳐있어서 집을 재충전, 휴식의 공간으로 만들려는 노력이 쉽지가 않다. 

 

그럼 집이 좁으면 집 밖에서라도 여유가 있어야하는데, 서울은 정말이지 어디에 있어도 사람이 가득하다. 너무 많이 보이는 사람들. 이걸 가장 크게 느끼는 곳은 대중교통인데, 사실 나는 부모님 댁에서 지내는 동안에도 그렇고 걸어다니는 것을 가장 선호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게 되는 순간 숨이 막히니까. 사람이 많은 것도,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검은 머리인 것도, 빠짐없이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나에게는 다 힘든 지점들이다. 모두가 너무 똑같은 모습인 것이, 나는 힘들다. 그 모습들이 너무 가까운 것은 더 힘들다. 

 

나만의 공간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먼저 그 크기가 중요하고, 그 주어진 크기 안에서 어떻게 기획하고 디자인하느냐가 중요하고, 그래서 그 안에 있는 사용자가 활용하고 공간에 동화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고 느낀다. 크기가 큰 것이 좋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최소한의 거리가 보장되는 것이 필요하고, 그 안에서 필요한 공간과 원하는 공간을 구분하고 그 목적과 용도에 맞게 가구와 디자인이 더해지고, 시간을 들여 그 공간에서 나를 녹여내는 그것이 원룸에서는 참으로 쉽지 않다는 것. 원룸 밖에서도 마찬가지이고.

 

나는 동생이 지내는 원룸에서 지내는데, 내가 있는 동안 동생이 원룸에서 함께 있는 것이 아닌데도 이렇게 힘든 것을 보면, 이 공간에서 지내는 동생이 기특하기도 하고, 나나 내 동생이 아니어도 이 공간에서 누군가는 지낼텐데 하는 생각이 드니 마음이 여러 모로 좋지가 않다. 

 

코로나로 전세계가 자신이 가진 공간 안에 갖혀 있던 2년의 세월동안, 모두들 공간의 중요성을 몸소 느낀듯하다. 침실과 거실공간, 주방, 화장실, 또 이외에도 숨을 더 편하게 쉴 수 있게 하는 공간들. 한국에서는 힘든 이 공간이 외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내가 더 쉽게 가질 수 있는 것이다 보니 자꾸 외국이 더 그리워지는 듯 하다. 

 

앞으로 한달 조금더 남은 한국에서의 시간을 잘 보내고 가야할텐데. 쉽지가 않다. 3월 말부터는 서울이 아닌 부모님 댁에서 지낼 예정인데 그러면 지금보다는 낫겠지 하지만, 그것도 내 공간은 아니니.

 

공간에서 내가 온전히 나로 있지 못할 때, 에너지 소모량은 훨씬 크고, 잠도 더 필요하고, 아침에 자동으로 눈을 뜨는 시간도 달라진다. 새벽 5시면 자동으로 눈을 뜨던 내가 이제는 7시에나 눈을 뜬다. 일어나서 곧장 일기장과 펜을 집어들고 거실에서 밖을 바라보며 바다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쏟아내던 또는 책을 붙들고 마음을 녹이던 그 모습은 지금은 온데간데 없다. 갑갑함에 멍하니 앉아있거나 누워있는 시간을 내일부터는 동네 산책이라도 할 수 있기를 바라며. 

 

다섯, 넷, 셋, 둘, 하나. 숫자를 세고 나는 조금 더 넓은 공간으로 나가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