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디지털노마드라고 일상이 크게 다를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하는게, 결국 기대감만 높여주는게 아닌가 해서이다. 하루모습이라는게 배경지만 다르지, 일어나서 밥먹고 일하고 쉬고 하는 것들은 같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을 적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이상적인 하루의 모습을 물어봤다. 아침에 일어나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나면 혼자 아침 산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타코를 사서 먹고, 일을 집중해서 조금 하고 난 뒤에는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는 주짓수나 다른 좋아하는 운동을 다녀오면 좋겠다고 하더라. 나의 이상적인 하루의 모습도 물어봐서 얘기하는데,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나는 그 사람보다 훨씬 일찍 새벽에 일어나는 편이기는 한데, 시작하는 시간만 다르다 할 뿐이지 결국에는 비슷한 내용이었다. 새벽에 일어나서 해가 뜨는 것을 보며 일기를 쓰고, 책을 읽거나 팟캐스트를 듣고, 마음에 새길 것은 한두줄 정도라도 적어놓고, 간단하게라도 몸을 움직이고 나면 아침이 된다. 아침 루틴은 대략 두세시간 정도? 오전 중에 일을 마칠 수 있으면 가장 좋고, 나는 아침 겸 점심을 잘 먹는 편이라 일을 두세시간 하고 나서 열시나 열한시쯤에 먹고 나면 다시 일에 집중했을 때 두시나 세시정도면 일이 모두 끝났을 거다. (나는 풀타임으로 일하지 않는다. 소득이 적지만 적당한 시간만큼만 일하고 아껴서 사는 것이 현재로서는 만족스럽다.) 폴을 타거나 복싱을 다녀오거나, 서핑을 하거나 무엇이든 집중할 수 있는 + 근력을 키울 수 있는 운동을 한두시간 하고 돌아와서 노을을 보면서 요리를 직접 해서 저녁을 먹고, 하루를 조용히 마무리하면 좋다. 자기 전에는 다음 날 아침에 바로 들고 나갈 수 있도록 노트와 펜을 제자리에 잘 놓는 것을 빼먹지 않는다. 영양제나 물을 챙겨놓는 것도 함께다. 그 사람은 이 모든 활동들의 틈들 사이에 좋아하는 사람과의 교차점이 있어서 중간중간 스쳐지나가며 손을 잡는 것이 좋다고 했다. 일상을 공유하는 방식이랄까. (실은 이렇게까지 예쁘게 말한 건 아닌데 내가 내맘대로 해석해서 미화했다 ㅋㅋㅋ)
이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시간은 내게는 단연 새벽시간이다. 아침이라도 하지 않고 새벽이라고 한 것은 새벽이기 때문에. 그 시간은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 것이다. 이제는 진심으로 왜 미라클모닝이라고 하는지, 새벽에 일어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새벽시간이 주는 고요함은 나의 집중도를 올려준다. 나의 집중은 다른 사람이 아닌 나에게 쓰인다. 나는 일어나자마자 노트와 펜을 들고 방을 나서서 탁 트인 공간으로 가 자리를 잡고 앉는데, 바로 마음 속에 떠오르는 생각들과 감정들을 적는다. 보통 바로 전날 있었던 사건이나 했던 일에 대해서 간단히 적고 그 일이 나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 일으켰고 그 감정이 나에게 일어난 이유나 나의 생활 또는 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찰하고 적어 내려간다. 이 과정이 나에게는 엄청나게 중요한 것이, 나의 감정을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볼 수 있게 해주면서도 반성은 하고 또 비난은 하지 않고, 나의 감정에 대한 흐름을 알게 되니까 나는 어떤 사람인지 파악도 하게 되고 나의 필요와 욕구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내가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인정하고 그런 나를 계속해서 발견하는 과정에서 질문도 많이 하고 나를 끊임없이 궁금해한다. 누가 그랬던가 사랑하면 끊임없이 상대방에 대해 알고싶다고. 그 호기심을 유지하는 것이 사랑을 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마지막에는 이렇게 나를 발전하고 성장시켜나가고, 나를 돌보고 가꾸는 과정 속에서 나 자신에 대한 사랑을 찾게된다. 그리고 새벽시간은 나를 사랑하는 시간이 된다. 나는 나를 경험하고 느끼고 있는데, 그런 나를 어떻게 큐레이팅을 할까 고민하고 나를 나의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어보자 생각하면, 깨닫게 된다 왜 그러고 싶은지. 나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으니까. 진부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나 참말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나에게는 내가 가장 소중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새벽시간은 나 스스로를 향한 사랑고백이 된다. 이렇게 시작하는 하루가 빛나지 않을 수 있을까.
이상적인 하루는 일상 속에 있고, 일상을 이상적이게, 가장 아름답고 즐겁고 활기차고 보람차게 만드는 것은 나에게는 새벽에 있다.
지난 세달간 아프리카에서 지냈다. 새벽에 사랑을 고백하면서 오후에는 사자, 코끼리, 기린을 야생에서 보면서, 마음이 맞는 친구들과 함께하며, 나는 이상적인 하루들을 보냈네, 하고 말을 하니 웃음이 난다. 디지털노마드라는 것이 새벽시간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어느 정도는 맞지만, 다는 아니라고 생각해서, 지금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사랑고백를 할 시간을 찾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