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빛나는 디지털 노마드 생활기

열정이 전염될 때 본문

일기

열정이 전염될 때

슬로우마드 이미써니🌞 2023. 6. 3. 02:45

내가 몇몇 사람에게 작년 연말을 보내면서 물어봤던 질문 중 하나가, "당신의 올해의 인물은 누구인가요?" 였다. 작년 내 올해의 인물은 남아공에서 온 친구 아이린이었는데, 그 친구가 나를 관찰하면서 한 가지 이야기해준 것이 있다. 내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의 특질이나 열정에 잘 전염된다는 것. 

 

술을 잘 안마시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는 때에는 누가 술마시겠냐고 하는 질문에 절대 안마시는 것처럼 대답을 하고,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친구와 친하게 지내면 마치 내가 클라이밍을 처음부터 좋아했던 것 마냥 그 사람의 열정에 전염되어서 거기에 푹 빠진다는 것이었는데, 처음에는 "엥, 내가?" 하면서 아니라고 손사래를 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 스스로의 모습을 조금씩 돌아보니 그 말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차츰차츰 드는 것이다. 

 

최근에 굉장히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쏟는 취미가 나에게 몇 개 생겼는데, 바로 클라이밍과 아크로요가다. 지금 지내는 곳에는 클라이밍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굉장히 많은데, 동네가 동네인지라 (프랑스 알프스...) 등산, 클라이밍, 비아페라타 천국이고 겨울에는 스키를 맨날 타러 시즌패스 사가지고 오는 친구들도 여럿이다. 나는 클라이밍 경험이라고는 호주에 있을 때 볼더링 짐에 한 번 가본 것, 나미비아에 있을 때 클라이밍 짐에 한 번 가본 것이 다였는데, 그래도 2년간 폴댄스를 하며 다져놓은 근육이 그래도 조금은 남아있어서 (폴댄스 뿐 아니라 운동 전체를 쉰지가 1년이 훌쩍 넘었다 흑흑) 시도를 해보자고 했는데 아니 이게 뭐야 너무 재미나쟈나쟈나 이러면서 푹 빠져버렸다는 그런 이야기이다. 

 

내가 스스로 발견한 열정이 아니고 다른 이에게서 전염된 열정이라, 그 사람과 물리적으로 떨어지게 되면 그 열정은 사라지는 걸까? 하고 생각해본다. 앞으로 알게 되겠지. 내 스스로 발견한 열정과 다른 이에게서 전염된 열정이라고 구분 짓는 것도 웃기긴 하다. 열정이면 열정이지, 하나는 진짜고 남은 하나는 가짜인 것마냥 다르게 취급할 것은 무엇이며, 다른 이에게서 전염된 열정이라고 하더라도 그 열정이 모든 사람에게 전염되는 것도 아닌 것이거니와, 그게 나에게 닿았을 때마다 꼭 내 열정이 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나에게 닿은 열정을 이후로도 계속 가꿔나가는 것은 내 몫이니까.

 

나는 클라이밍 신발을 샀다. 지금까지 세 번 야외 클라이밍을 나갔고, 이번 주말에도 날씨만 좋으면 한 차례 더 나갈 예정이다. 동네에 야외 클라이밍을 할 곳이 없으면 클라이밍 짐이라도 찾아가야지. 아크로요가 연습을 위해서 아크로요가 잼을 할 그룹도 찾았다. 7월에는 다시 만나는 친구와 파트너로 매일 연습을 할 참이다. 나에게 클라이밍과 아크로요가를 전염시킨 친구는 장소를 고를 때 애초에 그 두 가지를 염두에 둔다고 했다. 나도 앞으로 그렇게 될 것 같다. 아크로요가를 더 잘하려면 물구나무서기 연습도 해야하고, 클라이밍을 더 잘하려면 여기 저기 힘도 키워야하고, 할 게 너무나도 많다. 언제 다하지?

 

열정이 전염되어서, 나에게서 일어나는 화학작용들을 보는 것은 참 신기한 경험이다. 인간은 참 쓸데없는 일을 많이한다.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고, 몸을 다칠 수도 있는데, 힘이 드는데, 잘 안 되면 짜증이 나는데도 계속해서 그 쓸모없는 짓을 도전하고 연습을 이어나간다. 열정이란 그런 것이지. 열정의 힘은 참 대단해. 사람의 행동을 쥐락펴락 할 수 있다는 게. 

 

이 열정이 얼마나 갈 것 같냐고 물어보면, 그건 나도 모르겠다. 얼마나 갈지, 이러다가 금방 시들어버리는 것은 아닐지, 지금 당장은 그럴 것 같진 않지만 또 누군가가 다른 열정에 불을 지핀다면 내가 다른 열정으로 옮겨갈 수도 있겠지. 나는 항상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편이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러다가 또 과거의 열정에 다시 불을 지필 친구들을 만날 수도 있고, 내 스스로 혼자서 그 열정의 문을 다시 두드릴 수도 있고, 처음 불을 지폈던 그 친구들을 재회할 수도 있으니까. 어느 열정이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지금 마음으로는 클라이밍과 아크로요가를 쭉 이어나가고 싶다. 그리고 내 열정인 폴댄스도 어깨가 회복되면 다시 시작해야지. 

 

열정은 나를 어디까지 데려갈까. 열정으로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열정으로 지금까지 온 이 곳이 좋고, 열정으로 앞으로 나아갈 곳들과 나의 여정들이 기대가 되는 하루였다. 오늘 나는 호수에 놀러가서 친구들이랑 아크로요가하고 수다떨고 놀았다. 사진으로 남기기는 해야지 하고 나온게 아래 사진이다. 이런 열정의 순간들이 내 삶을 꽉꽉 채우는 게, 참 좋다. 인생을 충만하게 살고 있다고 느낀다.